솔로몬의 위증

[우혁성민] Summer Daydream-2

波濤 2017. 7. 30. 20:04


어머니의 식당에 있는 티비에는 항상 뉴스가 틀어져 있었다. 성민이 만화 영화를 볼라 치면 어머니께 들었던 손님들이 티비를 보셔서 안 된다는 그 말에 언젠가부터 성민은 리모콘이 티비 바로 옆에 놓여있어도 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딱히 재미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몸집보다 큰 의자에 앉아 다리를 데롱거리며 뉴스를 보고 있으면 세상엔 항상 나쁜 일만 가득한 것 같았다. 누군가 죽고, 다치고, 불이 나고, 무언갈 훔치고. 화면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하염없이 슬프거나 지독히 화가 나있거나 했다. 후자에서, 성민은 언뜻 비친 그의 아버지의 얼굴을 애써 무시했다.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 손님들이 먹고 간 음식이 담겼던 그릇을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씻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반팔 아래로 보이는 푸른 멍은 아버지의 얼굴처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성민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유명한 도박꾼이었다. 어머니가 식당을 해서 번 돈을 도박으로 날려먹고 와서는 화풀이로 어머니를 때리는 게 다반사였고 성민은 지금보다도 어릴 적부터 그것을 고스란히 보고 자랐다. 성민이 놀이터에서 만난 소년을 무시할 수 없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워낙 높은 곳에 앉아있던 이유도 있었다만은, 몸 곳곳에 나있는 멍자국이 심상치 않아서. 그저 넘어져서 난 상처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누구에게 맞았냐는 물음에 순간 주춤했던 몸과 표정은 결코 대수롭잖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 소년의 얼굴을 떠올리던 성민은 한숨을 푹 쉬었다. 나이 답잖게 생각만 많다고,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때로 듣는 것은 괜한 말은 아니었다. 곧 사건사고에서 기상예보로 넘어간 뉴스 화면에서는 한동안 무더위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어쩐지 창밖으로 먹구름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눅눅한 냄새가 났다.






*






사실 다시 만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랬는데, 지금 마주하고 있는 소년의 얼굴은 여전히 많은 것이 거슬린다는 표정이었다. 저번엔 나무 위더니 이번엔 담벼락이라니. 왜 이렇게 높고 위험한 곳이라면 다 올라가 앉아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거기 위험..."


"야. 너 나 따라다니냐?"




성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년의 목소리가 말허리를 잘랐다. 영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은 여전하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성민은 전처럼 손을 뻗었다.




"그런 적 없어. 내려오기나 해."


"지랄. 너 내가 또 아는 척 하면 죽는다고 했지?"


"그러게 왜 자꾸 그런 데만 올라가고 난리야. 내려와."


"아, 진짜 또라이 새끼..."




투덜거리면서도 전이랑은 달리 순순히 내려오는 모습에 성민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픽 올라갔다. 여전히 제 손은 잡지 않았지만 적어도 이번엔 쳐내지는 않았으니. 제 쪽을 보지 않고 걸음을 옮기는 소년의 옆을 따라 걸으며 어떤 말은 하지 않았다. 얼마쯤 걸었나, 그러다 제 쪽을 흘긋 보는 소년의 곁눈질에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




"너 이름이 뭐야?"


"그건 알아서 뭐하려고 묻냐?"


"그냥. 난 이성민인데. 너 이 동네 안 살지, 여기 좁아서 얼굴 다 알거든."


"... 그래서 뭐 어쩌라고."


"여기 왜 왔어?"


"... 아, 진짜 귀찮게 구네. 할머니 때문에."




할머니는 왜, 라고 성민이 입을 떼려던 순간 손등 위로 빗방울이 툭 떨어졌다. 비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나오기 전 언뜻 본 하늘이 유독 흐리다 싶어서 가지고 나온 우산이 한 쪽 손에 들려 있기는 했다. 다만 하나라는 게 문제였고. 소나기인지 삽시간에 굵어지는 빗방울에 소년 또한 당황스러운 듯 싶었다. 




"너 이거 쓰고 가."




그렇게 성민이 뱉은 말과 불쑥 내민 우산에 더 당황스러운 표정이 된 것 같기는 했지만. 당황보다는,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라고 말하는 소년의 목소리가 굳이 직접 듣지 않아도 이미 들린 것 같았다.




"너 집 여기서 머냐?"




예상의 범주에 없었던 말에 성민은 잠시 멍하니 소년을 보다 퍼뜩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별로 멀리 나온 것도 아니고, 뛰면 얼마 안 될 거리였으니까.




"그럼 같이 쓰고 가. 아, 너 씌워다 주고 나 쓰고 가면 될 거 아니야."




뭘 그렇게 얼빠진 표정으로 서있냐며 툴툴거리는 소년을 보던 성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어, 같이 쓰고 가자. 나중에 돌려줘. 그렇게 작은 우산 하나를 둘이 쓰고서 얼마쯤 걸었나, 곧 도착한 식당 앞에서 성민이 소년에게 손을 흔들었다.




"잘 가."


"... 야."


"어?"


"최우혁."




"최우혁 이라고, 내 이름." 






빗소리 속 제 이름을 알려주고 뒤돌아가는 소년의 어깨 한 쪽이 축축히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