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commission
낯선 나라에 가고 싶었다. 막연히 이국의 풍경을 상상하고 발을 디딘 곳에는 여기저기 깎아내린 검은 절벽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그 위에는 아슬아슬하게 짙은 안개를 걸치고 서있는 마른 나무가 드물게 자라고 있기도 했다. 불현듯 뜬금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곳이라면 정말 말라버린 꽃을 구할 수도 있겠구나. 누군가의 손을 타서 인위적으로 말라 버석해진 꽃이 아니라 오직 바람만으로 말라버린 꽃을 구할 수도 있겠구나. 그 꽃을 구해 그 위에 눈물을 떨어트리고 싶었다. 그러면 홀연히 사라진 그 사람이 돌아올까 하는 심산이었다. 자줏빛 라일락을 좋아했었지. 숨이 눈앞으로 하얗게 번져나갔다. 깨져나가는 눈 결정 소리가 귓가를 잘도 간지럽혔다. 나의 라일락, 나의 꽃. 늪 같은 검은 호수에 비친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더 검었다. 그 검은 동공이 물결에 흔들렸는지 자체만으로 흔들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이런 곳에 파랑새가 살 리 없었다. 그런 생각을 반증하듯 무채색의 새가 바로 눈앞으로 날아갔다. 새가 사라진 해저보다 깊은 절벽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찬 바람은 곧 어느 때보다 지독한 병을 몰고 왔다. 사경을 헤매이는 동안 몇 명의 떠나간 이가 내 머리맡을 지켰던가. 검은 늪 위로 자줏빛 물이 뚝, 뚝 번져나갔다. 그것이 꼭 막혔던 혈관이라도 되었던 양 검은 늪이 온통 자줏빛으로 물들었을 때 천근처럼 무겁던 눈이 가까스로 뜨이고 눈처럼 흰 천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밤이 되기 전에, 그전에…….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로 당신이 좋아하던 그 꽃의 꽃말을 들었다. 사랑의 시작. 당신이 없는 밤이 지는 땅에서 우리가 사랑하던 시간을 되돌리려 했다니 이는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이국의 시간에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