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일부 샘플
"소식은 들으셨죠. 제가 왜 왔는지도 아실 테고요."
앞은 그렇다 쳐도 뒤에 따른 말은 무슨 뜻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목의 얼굴에 잠시 눈을 가느스름히 뜬 락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보다 눈치가 없으시네요… 가시죠. 어차피 갈 곳도 없으시잖아요."
항상 느끼는 것이었으나 지금 목의 앞에 서있는 사내에겐 시끄럽지 않은 위압이 있었다.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그런 힘 말이다. 그래서 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래도 저래도 죽기 보다야 나은 선택이리라, 그리 생각했다. 목이 따를 사람은 이제 최두일이 아닌 이 사내, 서영락이 되었다.
그의 두 번째 구원이었다.
**
최두일의 부고 후 서영락 밑으로 들어간 조목의 일정은 매우 바빠졌다. 물론 서영락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서영락이 바빴기에 조목 또한 바빴다는 말이 더 적절했을 것이다. 목은 서영락의 집에 들어와 그가 있는 마약계 일을 맡은 후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단순한 패싸움이나 돈 세탁이 아닌 철저한 회사 체계로 돌아가는 마약 사업은 목에게 도통 맞지 않았다. 두일을 사이에 두었을 때 목과 락, 둘의 관계는 그닥 나쁘지 않았으나 목이 회사에 적응하지 못할 무렵부터 둘의 관계는 눈에 띄게 삭막해지기 시작했다. 락 또한 목이 회사 체계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겉도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갈수록 짙어지는 목의 눈 밑 검은 자욱을 보는 락의 심정도 그리 편하지 않았다. 와중에 옛날처럼 연고라곤 없어진 목의 뒤틀린 애정이 향하는 곳은 오롯이 락이 되었다. 락이 바이어들을 만나고 오는 날이면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을 굳이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대놓고 락의 이름을 부르며 화를 낼 때도 있었다. 몸을 섞을 때조차 마찬가지였다. 락은 전보다 확연히 거칠어진 목의 허릿짓에 신음을 흘렸고 목은 그것을 알면서도 거칠게 그를 몰아붙이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둘의 관계는 불안정했고, 마치 절벽의 끝만 같았다. 언제라도 떨어질지 모르는 곳. 하지만 목은 어떻게 그곳에서 벗어나야 할지 알지 못했으며 락은 침묵했다. 집은 폐허와도 같은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곳을 벗어나거나, 바로잡지 못하였다. 깎아지른 절벽만이 휑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