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민정구] 별거 아닌 일
별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한도일까 아니면 한계일까.
사람을 죽이는 일도 별거 아닌 일이 될 수 있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
박정구와 이효민은 자주 싸웠다.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평범한 일상을 공유했다. 그들의 일상에 폭발이라거나 어두운 적색과 녹색이 칠해진 전선이 뒤엉켜있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은 아주 많이 평범할 뻔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은 옛날 옛적에 무산된 지 오래였다. 이효민은 방에 담배연기가 가득 들어차 있으면 짜증을 냈다. 그런 날이면 딱 봐도 싸구려 티를 내는 글자가 박힌 라이터가 죄 물에 젖어 못쓰게 되어 있었다. 틱틱거리는 소리만 날뿐 작은 불씨 하나 내지 못하게 된 라이터를 손에 들고 인상을 구긴 박정구의 시선이 꽂힐 무렵이면 이효민은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서도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거, 환기 좀 시키라니까. 요즘 담뱃값도 존나 올랐던데.
형, 배고픈데 우리 라면 먹을래?
이효민은 우리라는 말을 자연스레 썼다. 박정구는 그 이질적인 단어를 읊조렸다. 우리, 우리. 이효민과 박정구가 같이 있으면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건가. 언제부터? 이렇게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면 그 생각은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마냥 이효민을 처음 만났을 때까지 가닿곤 했다. 이효민과 박정구가 만나게 된 이유는 뭘까. 그리고 언제부터 우리로 묶일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건가. 처음 만나게 된 그 순간부터 찾을 수 없던 답이 지금에 와서야 유레카를 외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답이 나올 리 만무했다. 박정구는 마른 얼굴을 쓸어올렸다. 옆에서 잠들어 있는 이효민을 볼 때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새끼를 죽이면 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사실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
점화, 폭발. 이 둘의 연관성은 명확하다. 박정구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중간에 끼인 기폭제가 이효민이라는 게 문제였다. 이효민은 폭발의 근원지가 박정구인 걸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폭발의 근원지가 박정구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박정구는 이효민이 무서웠다. 이효민이 그렇게 싫다고 입에 달고 사는 꼰대 마냥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때가 있었다. 말이 연설이지 멱살 잡고 소리치는 것에 불과했다. 박정구는 분명 화를 냈다. 그런데 이효민은 그렇게 대답했다.
형, 내가 무서워?
박정구는 숨이 턱 막힌다는 말의 뜻을 그제야 체감했다. 폐에서부터 복부까지 싸하게 피가 식었다. 이효민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 속이 다 보인다는 듯이. 박정구는 그런 이효민이 무서웠다.
그래서 박정구는 이효민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
오늘도 뉴스에서는 살인사건을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댔다. 박정구는 옷을 갈아입고 맥주 한 캔을 땄다. 너는 뭐 저런 걸 보고 있냐, 툭 뱉듯 던진 말에 이효민은 그게 무슨 재미있는 말이라도 된다는 양 웃었다. 왜, 재밌잖어. 이효민의 그런 실없는 말은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박정구는 문득 집이 평소와 무언가 다르다는 걸 느꼈다. 뭐지. 그러고서야 집안 공기가 여즉 매캐하다는 걸 알았다.
너 웬일로 환기 안 시켰냐.
형이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 지랄, 불이나 꺼. 자게.
맥주캔은 비었고 티비도 꺼졌다. 불 한 점 들지 않는 깜깜한 방에서 둘이 누워있을 때면 가끔 박정구는 이효민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박정구는 옆에 누워있는 이효민의 숨소리에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받았는지도 몰랐다.
형.
... 왜, 잔다면서.
형은 여전히 존나 시시하다.
박정구는 감았던 눈을 뜨고 황급히 불을 켰다. 당연히도 이효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