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민정구] 인어人魚
"형. 바닷물에서 사는 건 어떤 기분이냐?"
다 맞춘 퍼즐을 엎어놓고 핸드폰 액정 위로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리던 이효민이 물었다. 막 씻고 나온 채, 검은 머리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대강 수건으로 닦아내던 박정구는 새삼스럽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박정구가 이효민에게 정체를 들킨 건 8개월 전이었다. 뒷목에 남아있는 옅은 금빛이 도는 흰색 비늘이 원인이었다. 여름에도 꼭 목티를 입고 다녀서 별종이란 소리도 들었지만 그건 어색한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추위를 많이 탄다는 핑계도 적잖이 써댔다. 겨울엔 목도리를 하면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으니 계절 중에선 가장 편한 시기였다. 어차피 남의 뒷목을 신경 써서 바라보는 사람은 드물었고 하룻밤 자는 상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무보단 삽입이 중심인 섹스에서 몇 개 되지도 않는 본체의 흔적에 집중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효민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날 이효민은 엎드린 박정구를 두고 한참 말이 없었다. 긴 간극에 짜증이 일어 고개를 돌리려 하는 박정구를 제지하며 이효민은 박정구의 뒷목 위로 입을 맞췄다. 순간 몰려오는 아찔한 감각과 들켰다는 본능적인 불안감에 박정구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곧장 몸을 돌려 침대 구석으로 파고든 박정구가 벌벌 떠는 동안 이효민은 그 모습이 웃기다는 듯 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어우, 걱정 마. 아무한테도 안 말할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태연자약한 이효민을 보는 박정구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차피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불치병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뭐라고 변명하지……. 까맣게 빛나는 눈동자 앞에서 박정구는 마치 제 목에 목줄이 채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연스럽게도 그것의 손잡이는 이효민의 손아귀에 단단히 잡혀있었다.
"뭘 무슨 기분이야. 좆같지."
박정구의 대답에 이효민은 킬킬대며 웃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함께 보냈음에도 박정구는 이효민의 일부라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게 대답할 생각도 없었지만. 하필 정체를 들킨 인간이 이효민이라는 건 좋은 일이면서도 좋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분명 입을 털 생각 같은 건 없어 보이는데도 어쨌든 박정구의 약점을 이효민이 쥐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박정구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입에 문 것에 불도 붙이기 전에 이효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거, 형은 담배 좀 끊어~. 바닷속에서도 담배 피워?"
"좆까, 새끼야."
"형 정체 알고 있는 사람한테 말이 좀 심하다?"
"……."
박정구는 입에 물었던 것을 빼고 입술을 짓씹었다. 씨발. 씨발. 걸려도 하필 존나 이상한 새끼한테 걸려가지고. 검은 패딩을 챙긴 박정구가 현관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형 나가게?"
"네가 집 안에서 피우지 말라며."
"나갈 거면 같이 나가자고. 나도 살 거 있어."
"뭔데?"
"금붕어 밥."
"지랄."
"아니, 그럼 애를 굶겨?"
"너 그딴 취급하는 거 작작해라."
"피해 망상 존나. 관심 좀 가지고 살아~ 그래도 동거인인데."
무어라 욕을 덧붙이려던 박정구의 시선이 이효민의 손가락 끝에 가닿았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둥근 어항이 서랍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투명한 물 안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흰 금붕어를 본 박정구는 순간 우습게도 금붕어와 눈이 마주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제 목뒤에 있는 역린처럼 흰빛의 그 물고기와.
"미친 새끼."
미간을 구긴 박정구가 이효민을 뒤로 한 채 현관 밖으로 걸어갔다. 답잖게 햇살이 따가웠다. 모든 바다가 다 말라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심할 여지도 없게. 들킬 가능성도 없게. 순간 마주했던 금붕어의 둥근 눈이 떠올랐다. 어항에 갇혀있는 신세가 하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박정구는 발 근처에 있던 캔을 발로 찼다. 시끄러운 소리가 낡은 빌라들 벽 사이로 울려 퍼졌다. 그래봤자 어항 속에서 울리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