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석우] 해피투게더
"노란 장판 서사는 이제 구질구질해."
서석우와 이혁은 영화감상 동아리에서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어디의 대학에 진학했는지도 모르는 사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서석우만 몰랐다. 이혁은 S대에 갈 수 있었음에도 서석우를 따라 등록금이 비싸기로 소문난 Y대를 택했다. 비록 과는 달랐지만. 동방에 앉아 화질 좋은 티비에 어울리지 않는 B급 영화를 보던 서석우가 중얼거렸다. 구질구질하다는 그 말이 왜 이혁에게 날카로운 송곳처럼 꽂혔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래?"
그래서 이혁은 짧은 물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일부러 답이 돌아오지 않을 물음을 택했다. 이혁과 서석우는 둘다 이런 B급 영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랬음에도 이혁은 구질거린다는 그 말에 찔려 서석우를 쳐다보지 못했다. 서석우를 따라서 대학에 온 자신에게 서석우가 구질거린다고 또박또박 말한 것만 같아서. 서석우는 별거 아닌 말도 특유의 건조한 눈빛과 말투로 그 말이 무어라도 되는 것처럼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이혁, 너 요즘도 농구 해?"
"농구?"
"너 농구부였잖아. 고등학생 때."
"…알고 있었어?"
"같은 반이었는데 이 정도도 알면 안 돼?"
서석우는 심드렁하게 약간 미간을 좁혀 이혁을 바라보았다. 왜 유난이냐는 표정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그 별거 아닌 일이 이혁에겐 별거인 게 문제였다. 귀 끝이 홧홧했다. 네가 별거 아닌 동아리 하나를 기억한다는 것 하나로.
"요즘은 안 하지…. 동아리 활동도 필수라길래 그냥 쉴 만한 걸로 하나 든 건데."
"그래? 잘하던데. 아, 난 야구부였어. 별로 한 건 없지만. 그냥 애들이 들자길래 들었던 거거든."
"아, 그랬구나."
일부러 짧게 대답했다. 야구부에 들걸, 하고 후회했던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서석우는 고등학생 때부터 같은 거 달린 놈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경기가 끝나면 잘한 거 하나 없는데도 둘러싸여서 애들이 건넨 포카리를 마셨다. 땀도 별로 안 났으면서. 공주님 같이.
"이혁 너 건너편 여고 애들한테 인기 많았어. 나 거기 아는 애 있었거든."
"아…, 전혀 몰랐네."
"너도 진짜 눈치 없다."
건조하기만 했던 서석우의 입가가 잠시 호선을 그렸다. 살짝 접힌 눈매가 예뻐서 이혁은 서석우가 뭘 보냐고 핀잔을 줄 때까지 서석우를 바라보았다.
"영화 끝났다. 또 뭐 볼래. 감상문 세 편 제출해야 동아리 점수 인정해준다던데."
"난 아무거나 괜찮은데."
"그래? 그럼 내 취향대로 튼다."
구질거리는 감성이 싫다던 서석우는 홍콩 영화 한 편을 틀었다. 남자 두 명이 느리게 탱고를 췄다. 서석우가 말했던 구질거리는 감성과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는데 서석우는 졸지도 않고 그걸 끝까지 봤다. 이혁은 그런 서석우의 얼굴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흘긋거렸다.
"감상문 인터넷 보고 베끼지 마."
"갑자기?"
"이거 내가 좋아하는 영화야."
뜬금없는 말에 이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을 지켜보던 서석우는 걸어두었던 크로스백을 멘 채 신발을 신었다.
"나 먼저 간다."
서석우가 나간 동방은 조용했다. 이혁은 DVD를 처음부터 다시 보기로 했다. 남자 두 명이 싸우고, 탱고를 추고, 키스를 했다. 서석우는 왜 이 영화를 좋아할까. 남자 주연 둘이 헤어지기까지 이혁은 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었다. 서석우는 왜 이 영화를 좋아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