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이카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안개가 뿌옇게 끼어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연못에서 오이카와는 홀로 작은 나무배를 타고 있었고, 사공도 없는 배는 앞을 향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그 배에서 내리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흐리기만 했던 주변의 풍경이 맑고 또렷하게 드러나며 아름다운 분홍빛의 연꽃 한 송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단언컨대, 그 꽃은 오이카와가 살면서 보았던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고 그 꽃을 눈에 담은 순간 오이카와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눈에 보인 것은 익숙한 자신의 방 천장. 때에 맞춰 매일 맞추어 놓는 알람 시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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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하루였다. 새벽에 꾸었던 이상한 꿈은 잊을 만큼 아주 평범한 하루.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의 첫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식사를 막 마쳤기 때문인지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한 몇 명의 아이들이 고개를 꾸벅거렸고 창가 자리에 앉은 오이카와는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문득 글씨가 가득한 칠판에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어렵지 않게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아낼 수 있었다. 


"히쨩."


오이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 작은 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아니, 아주 정확히 말하자면 이름이 아니라 애칭에 가까운 그 별명을. 익숙한 모습을 눈에 담자 자신을 '선배'라고 부르는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만 같아서 오이카와는 턱을 괸 채 한참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스스로의 마음을 어떠한 감정이라고 한마디로 줄여서 단언할 수 있는 순간은 과연 언제 찾아오는 걸까. 확신이란 그만큼의 책임감을 동반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오이카와는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높게 뜬 해가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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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수고했어!"

"어~, 잘 가! 내일 봐!"

"다음 시간엔 더 잘하자고!"


지루한 수업 끝에 찾아온 부 활동 시간까지 모두 끝이 난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히카리와 오이카와는 함께 하굣길을 걸었다. 아주 늦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 활동이 이른 시간에 끝나는 것도 아니었기에, 점심에 높게 떠있던 해는 이제 점차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히쨩?"


꽤나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오이카와의 물음에 잠시간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히카리가 약간의 간극을 두고 대답했다. 


"그럭저럭? 특별히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럭저럭이면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는 거네?"

"음…, 평소랑 다를 거 없었으니까."

"히쨩의 오늘이 100퍼센트 좋은 하루가 아니었다니 아쉬운걸."


히카리의 말에 가볍게 대답하던 오이카와의 머릿속에 문득 어젯밤 꾸었던 꿈이 스쳐갔다. 희뿌연 안개가 낀 연못, 나룻배, 그리고 꿈이 깰 무렵 보았던 크고 아름다운 연꽃까지. 점점 낮아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던 오이카와가 문득 히카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히쨩, 연꽃 좋아해?"


별생각 없이 물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히카리는 잠시 걸음을 멈췄고, 낮아지는 해가 물들인 주홍빛 노을을 등지고 서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었다.


"응, 좋아해."


바람에 흩날리는 긴 밀색 머리카락, 그리고 대답에 이어진 옅은 웃음. 오이카와는 잠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 정말 히쨩을 좋아하는구나.'




어느 날의 노을과 바람은 누군가의 마음에 확신을 안겨주었고, 어느 날의 꿈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알려주었다. 안개가 걷힌 연못에 핀 연꽃은 찬란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주 오래도록 아름다울 것이었다.

  

by 波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