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죽이 모델로 유명세 탄 건 시간이 꽤 되고도 남은 일이었음. 얼굴만 봐도 흐뭇한 비쥬얼 인지라 예능에서 진지과묵 컨셉으로 밀고 나가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린 일은 당연했음. 그런데 언제 한 번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일이 터진 거임. 이상형 질문하면 대게 착한 사람, 배려심이 깊은 사람처럼 돌려 말하는데 동죽은 신인 아이돌 명영을 딱 지목해버린 것임. 게스트들은 좀 당황했지만 팽동죽이니 그러려니 하고 웃고 넘어감. 그런데 언론이 이런 걸 그냥 놓칠 리가 없음. 유명 모델 동죽의 이상형이 신인 아이돌 명영이라고 기사까지 떡하니 내버렸음. 동죽의 소속사는 그냥 넘기려 했지만 명영의 소속사는 가뜩이나 신인인 명영의 이름을 띄울 수 있는데 이 기회를 흘려보낼 리가 없었음. 그럼 엄청난 손해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죽에게 출연 제의가 들어옴. 매니저는 경악했음. 프로그램 이름이 '우리 결혼했어요'였기 때문임. 매니저도 종종 챙겨 보는 이 프로그램은 가상 결혼 프로그램이었음. 매니저는 경악했지만 동죽은 망설임 없이 찍겠다고 했음. 그도 그럴게, 사실 동죽은 명영의 팬이었음. 그것도 무명 시절, 완전 데뷔 극초기부터 팠던 골수팬. 그런 동죽이 명영을 볼 기회를 놓칠 리 없었음. 매니저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동죽은 명영이 속한 그룹이 신곡을 낼 때면 앨범을 적어도 다섯 박스 씩 샀음. 다섯 개 아니고 다섯 박스임. 그리고 팬싸에도 마스크 쓰고 썬글라스 끼고 검은색 모자까지 착용한 후 반드시 참석했음. 그렇게 출연 제의를 받아들이고 동죽은 명영과 우결을 찍게 됨. 촬영 전에 같은 계열은 아니지만 어쨌든 선배인 동죽인지라 명영은 약간 긴장하고 깍듯하게 인사했음. 동죽이 약간 늦게 반응해서 명영은 뭐가 맘에 안 드셨나 싶었지만 그냥 동죽은 잠시 고장 난 거였음. 화보, 앨범, 티비에서만 보던 명영을 실물로 영접하고 인사까지 먼저 받았는데 고장 나지 않긴 어려웠음. 방송은 의외로 순조로웠음. 매번 포커페이스인 동죽이 명영 앞에서는 온종일 온화한 미소에다가 일단 둘의 케미가 장난 아니었음. 키차이부터 분위기까지 정반대인데 그래서 더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음. 동죽과 명영은 금세 우결 최고 인기 커플로 급부상함. 특히 요리하는 장면에서 시청률이 높았음. 집을 다 태워먹으려 했던 동죽의 등짝을 팡팡 치는 명영이 너무 귀여웠기 때문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둘이 진짜 사귀는 거 아니냐,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평이 자자했음. 그리고 당사자인 동죽과 명영, 둘은 실제로 서로에게 감정이 싹트고 있었음. 붙어있는 시간이 길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명영은 무명 시절부터 자신을 좋아해 줬던 동죽을 알고 있었음. 긴가 민가 했으나 프로그램을 찍다가 확신하게 됨. 매번 싸인회에 오는 키 큰 올블랙 남자의 실루엣도 동죽과 완벽하게 일치했음. 동죽은 원래 명영을 좋아했으니 두말할 것도 없었음. 그리고 시청자 게시판에 사진 몇 장이 올라옴. 공원 벤치에 앉아 꽁냥대는 사람 둘의 모습은 누가 봐도 동죽과 명영이었음. 그게 어디 흔한 키 차이임. 증거는 없지만 이미 결정 난 일이었음. 그리고 실제로 만남을 시작한 둘은 이런 시청자 게시판을 모른 채 대기실에서 사진처럼 꽁냥대며 손장난이나 치고 있었음. 누가 뭐라고 해도 서로만 있으면 마냥 행복한 둘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