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그 나이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령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 보다 짙은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선도, 색조도 뚜렷하고 짙은 외모는 어쩐지 90년대 홍콩 영화에 출연한 배우를 떠올리게 하는 감이 있었고 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령은 적당할 만치 입술의 끝을 휘며 미소 지었다. 그 옅은 웃음의 끝에서 말린 장미를 짓이긴 물이 뚝, 뚝 떨어질 것 같노라고 열에 하나는 생각했으리라. 검은 눈썹 밑 보름달을 절반 잘라놓은 듯 반달 같은 눈매는 크게 찌푸려지거나 노한 것을 티 내는 법이 없었다. 남들에게 감정을 드러내 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가정교육 덕이기도 했고, 어떠한 것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성정 때문이기도 했다. 령의 눈은 대게 반쯤 접혀 웃음이나 긍정을 표할 때가 잦았다. 그럼에도 부하직원을 부리는 데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은 특정한 상황에서 나오는 령의 단호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호선을 그리던 입매가 굳게 다물려 직선을 그리고 휘었던 눈이 제자리-그저 가만히 뜬 눈-를 찾을 때면 평소 선해 보이기만 하던 눈동자가 상대를 꿰뚫을 듯 검게 빛이 났다. 그 눈이 마치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는 동물인 해태의 것과 닮아 있었다. 상황이 풀릴 때가 되면 그 검은빛은 다시 너그럽게 돌아와 부드럽게 빛났다. 령은 제 안의 타고난 화염을 조절할 줄 알았다. 촛대의 불이 과하게 타오르지 않도록, 필요 시엔 언제든 화염으로 번질 수 있는 불씨임을 누군가에게 경고할 수 있도록. 느리게 감겼다 뜨이는 검은 눈 안에선 언뜻 그 촛대가 담긴 검은 전등을 엿볼 수 있었다. 각진 전등 안에서 붉은 불빛이 일렁였다.
사람에게선 굳이 물어보거나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어렴풋한 짐작으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령에게도 그런 것들이 없잖아 있었다. 꼭 하나도 빼놓지 않고 채우는 셔츠의 단추 혹은 흐트러짐 없는 넥타이 같은 것. 구겨짐 하나 없는 코트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왼쪽 손목 위에 자리한 시계 같은 것들이 그랬다. 령은 반듯했다. 차분하고, 시간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 걷는 자리마다 발자국이 새겨진다 해도 흠잡힐 것 하나 없는 삶을 살아왔다. 가벼운 악수 한 번에서도 이 사람이 좋은 집안에서 자랐겠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 령이었다. 불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것처럼 령의 뒷모습을 짐작하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뒷모습이라 할 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류이령의 겉모습이 곧 그 자체라고 믿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나?
깊은 숨소리가 났다. 잿빛 연기가 희게 보일 때까지 령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손가락 사이에 쥐여있는 담배가 짧게 타들어갔다. '소실'이란 무엇일까. 령에게 그 단어는 짧아진 담배 개비를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 적이 없었다. 아니, 아예 겪어본 적 없는 단어라 해도 무관할 것이었다. 령은 새삼스레 제 이름의 뜻을 떠올렸다. 이로울 이利, 영리할 영伶. 다른 집안이었다면 분명 같은 음을 쓸지라도 다스리다, 거느리다 하는 뜻을 썼을 텐데 령의 이름은 그에 반해 이타적이고 소박한 면이 있었다. 뜻을 그렇게 지은 이유는 네가 바르게 자라길 바라기 때문이라며, 다정하게 속삭이던 목소리가 령의 귓가에 나지막이 울리는 듯했다.
당신이 나의 최초의 욕망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