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님 리퀘

카테고리 없음 2019. 3. 17. 01:55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여름을 알리듯 시끄럽게 우는 매미 소리도 빗물에 젖은 탓인지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비가 오는 탓에 차의 속력이 줄고, 그에 따라 목적지에 당도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차를 타고 있는 시간이 못내 답답했는지 선우는 푸석한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안 그래도 부스스한 머리가 더욱 부스스해졌지만 그건 신경 쓸 것이 아니라는 듯 시트에 몸을 파묻은 선우는 하얗게 번진 창 위로 손가락을 놀렸다. 톡, 토독. 선우가 손가락을 두드리는 소리는 마치 빗방울처럼 차 안에서 튀어나갔다. 


"지루하니."


건호 특유의 나긋한 투의 물음에 선우는 고개를 돌렸다. 선우와 마찬가지로 창밖을 보고 있던 건호는 아직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였다. 그 모습에 픽 웃은 선우가 다시 시트에 등을 기대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어, 형은 안 답답해? 난 막 심심하구, 지루하구 그런데."

"아무렴, 답답하지. 그래도 너와 있어서 지루하진 않구나."

"아이, 형은 내가 한 것두 없는데 꼭 그렇게 말을 해."

"사실을 말한 거란다."

"그으래? 형, 이거 봐."


하얗게 김이 번진 창 위에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려놓은 선우가 희게 웃었다. 그 자그마한 애교 어린 행동에 건호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강아지 같다, 남들이 보았다면 분명 그런 생각을 했을 테지. 아직 불이 들어오지 않은 가로등이 차창 밖으로 스치는 것을 본 선우가 가로등을 따라 그리듯 창에 일직선으로 줄을 그어내렸다. 마치 두 개로 나누어진 듯한 창을 바라보던 선우가 다시 건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형. 밤에 가로등 불빛 아래 서본 적 있어?"

"딱히 모르겠구나. 그건 왜 묻니."

"별건 아니구, 불빛이란 게 참 신기하단 말야. 나방이 그 불빛 아래를 왔다 갔다 하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꼭 노란 나비 같아 보여. 걔들은 나방인데."

"불이 꺼지면 사그라질 것들이구나."

"그치? 근데 되게 예뻤거든. 노란색 날개를 팔랑이는 게."

"네가 좋았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들이었겠지."

"전에 중국 바이어한테서 들은 건데, 나비는 불멸의 결합이래. 상징물이라구 하더라. 요즘 넥타이핀엔 나비 모양 장식도 있나? 있을 것 같아. 있으면 형한테 선물해줘야지."

"불멸의 결합…, 좋은 뜻이구나. 찾는다고 너무 애쓰진 말렴."


불멸의 결합이라. 不滅.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 나비가 되었다가도 결국 전등에 타서 죽어버리는 나방과 너와 나는 다를 것이다. 달라야 했다. 그제서야 건호의 시선이 선우에게서 다시 차창 밖으로 옮겨졌다. 여즉 퍼붓는 빗물 사이로 파란 나비 한 마리가 보인 것도 같았다. 여름의 전령일까. 아니면 저물어가는 여름의 사신일까. 끝나가는 장마 속에서 나비는 배회했고 선우와 건호는 검은 세단에 탄 채 부유했다. 이대로 빗물이 모여 바다가 된 곳에 잠겨버린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둘만의 바다. 건호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 등대가 옅은 갈빛을 비추고 있었다.   



by 波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