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장소를 꼽으라면, 아마 놀이공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하게도 워렌과 켈라니가 그 안에 있었다.
"워렌, 너무 귀여워요!"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 머리띠를 사서 미키 마우스 머리띠를 워렌에게 씌워준 켈라니가 밝게 웃었다. 어렸을 적 그의 금발이라면 더 잘 어울렸을까? 하지만 지금의 푸른 빛이 도는 칠흑색 머리카락에도 머리띠는 충분히 잘 어울렸기에 켈라니는 워렌을 따라 머리띠를 썼다.
"어때요, 워렌. 잘 어울려요?"
"켈라니도 너무 귀여워요."
워렌의 칭찬에 싱긋 웃은 켈라니가 이내 워렌의 손을 잡고 인파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놀이기구마다 늘어선 긴 인파의 행렬에 경악하다가, 그나마 짧은 줄이 회전 목마라서 워렌과 켈라니는 짧은 줄의 뒤를 이어섰다. 비교적 짧은 운행 시간 덕분인지 금세 둘의 차례가 왔고 잠시 말을 고를 수 있는 시간 동안 켈라니는 무엇을 보는 건지 말을 유심히 고른 후 위에 올라탔다. 그 옆의 말을 자처해서 탄 워렌이 궁금증이 어린 눈으로 켈라니를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고민하고 탄 거예요?"
"아, 말 눈색이 녹색이더라고요. 이거 하나만요."
"설마 내 눈색이랑 비슷한 걸 고른 거예요?"
"딱 맞췄어요."
켈라니가 대답을 마치자 회전목마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가길 반복하는 말 사이에서 워렌과 켈라니는 손을 뻗어 깍지를 꼈다가 놓는 등 사소한 장난을 쳤다. 놀이기구 시간이 끝나 말에서 내린 워렌과 켈라니가 다른 곳으로 가려 몸을 돌리려던 순간 켈라니가 고개를 돌려 조금 전 워렌이 탔던 말을 가리켰다.
"앗, 워렌이 탔던 말의 눈 색, 내 눈이랑 똑같은걸요!"
"들켰어요? …사실 농담이고, 몰랐는데 타고 나서야 알았어요."
"뭔가 좋아요. 워렌이랑 내가 한쌍으로 같이 있는 것 같잖아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걸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워렌의 말에 밝게 웃은 켈라니가 걷던 도중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 솜사탕이다. 진짜 오랜만에 봐요."
"그러게요. 곰돌이 솜사탕…, 귀엽네요."
"우리도 먹어 볼까요?"
색색깔의 솜사탕을 포장해서 팔고 있는 솜사탕 기계 앞으로 다가간 켈라니가 곰돌이 솜사탕 두 개를 주문했고, 곧 둘의 손엔 동그란 귀가 두 개씩 달려있는 곰돌이 모양 솜사탕이 쥐어졌다.
"하나는 노랑, 하나는 연두…. 레몬맛이랑 메론맛일까요?"
"으음, 그건 아닐걸요. 솜사탕은 맛이 다 똑같으니까?"
어차피 솜사탕의 맛보다는 귀여운 생김새에 매료된 둘이었기에 폭신한 솜사탕을 든 인파에 휩쓸려 약간은 피곤해졌던 둘의 표정이 사르르 풀려갔다.
"…!"
"워렌, 앗…."
아직 반도 먹지 못한 솜사탕이 바닥에 떨어지자 워렌은 그 자리에서 잠시 굳어버렸다.
"괜찮아요! 내가 다시 사줄게요."
"……."
시무룩해진 표정의 워렌을 끌고 다시 조금 전 들렀던 솜사탕 가게로 갔으나 곰돌이 모양 솜사탕은 더이상 팔지 않는다는 말에 켈라니는 워렌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폈다.
"워렌…, 우리 다음에 또 와요."
"미안해요. 켈라니가 사준 건데."
"괜찮아요! 우울해 하지 말아요. 우리 다른 놀이기구 타러 가요."
워렌의 신경을 돌리려 켈라니가 워렌을 이끈 곳은 관람차였다. 스릴 있는 다른 놀이기구에 비해 평온한 덕인지 얼마 기다리지 않고 관람차에 탈 수 있었고, 어느새 노을이 뉘엿뉘엿 져가는 하늘을 보며 켈라니는 흘긋 시선을 돌려 워렌을 바라보았다. 노을을 보며 사색에 잠긴 듯한 얼굴이 마치 어릴 적 워렌과 겹쳐 보이는 듯해서 켈라니는 한참 그런 워렌을 보고 있었다. 어렸을 시절 워렌도 지금의 워렌의 일부에 남아있을까. 워렌이 켈라니 본인을 볼 때도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을까. 그리고 시선을 느껴 고개를 돌린 워렌과 눈이 마주치자 켈라니는 자연스레 미소 지었다.
"머리띠 한 워렌이 새삼 귀여워서 봤어요."
"켈라니가 더 귀여운데… 노을이 예쁘네요."
"그거 알아요? '달이 예쁘네요'라는 말의 뜻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거."
"아, 들어본 적 있어요. …지금 달이 떴다면 말해줄 수 있었을 텐데."
"달은 항상 떠있지만 안 보이는 거라고 하잖아요. 워렌, 달이 참 예쁘네요."
켈라니의 말에 옅은 웃음을 지은 워렌이 말을 덧붙였다.
"달이 참 예쁘네요, 켈라니."
관람차가 하늘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서로를 향한 고백이 노을에 젖어들었다. 흰 손톱 같은 달이 뜬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