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X월 XX일.


이런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글을 쓰는 건 오랜만이네. 만년필 같은 건 그저 양복 주머니에 꽂아두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말이야. 뭐, 잉크나 펜촉이 사각거리는 느낌은 나쁘지 않아.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아무래도 세상은 많이 발전했잖아? 고작 13살짜리가 '죄와 벌'을 읽을 정도로 말이지. 방금 건 농담이었어. 아마 조이 넌 그때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야. 사인 받았다고 좋아하는 게 꼭 깡총거리는 토끼 같았지. 그 때 먹었던 도넛이 뭐였더라. 사실 난 참치 샌드위치가 먹고 싶었는데 닉에게 끌려가서 말이야. 그래도 널 만났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 티컵. 언젠가 이 편지를 읽을 거라 생각하며, 이만.


20XX년 X월 X일.


가끔은 헷갈려. 내가 아이언맨인지, 토니 스타크인지 말이야. 슈트는 내 도피처이자, 취미생활이긴 하지만…, 어쩌면 취미의 영역을 뛰어 넘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난 이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이건 비밀인데, '새출발 프로토콜'이라는 걸 준비하고 있거든. 아마 조이 너도 언젠가 알게 될 거야. See you soon.


20XX년 X월 XX일.


어쩌다 꽤 오래전에 네가 출연했던 잡지를 발견했어, 비비. 이쯤이면 아주 훌륭한 셀럽인데? 세기의 영재라니, 나도 못 가져본 타이틀이잖아. 내 자서전 제목으로 써볼까 생각중이야.  

Of course, this is just a joke.


20XX년 X월 XX일.


누군가의 취향을 파악하는 건 꽤 힘든 일이야. 물론 네 취향이 나라는 건 잘 알고 있어. 하지만 날 선물로 줄 순 없잖아? 내 사인 말고 네가 좋아하는 걸 찾기 힘들단 뜻이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뜻도 돼. 거대한 토끼 인형을 선물로 줄 나이는 지난 것 같아서 말이야. 원한다면 토끼 배를 눌렀을 때 나오는 'I love you.'를 내 음성으로 녹음해줄 순 있지만. 오, 자비스가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말리는군. 어쩌면 자비스가 나보다 널 잘 아는지도 모르겠어.


20XX년 X월 X일.


가끔은 끔찍했던 기억이 떠오르곤 해. 예를 들어 만다린에게 선전포고 후 내 집이 다 부서졌을 때처럼 말이야. 아마…, 내가 그 빌어먹을 아이폰에 대고 선전포고를 할 때 너도 쩔쩔매고 있었지? Oh, 그때의 내가 마치 영웅 같았다는 말은 안 해도 돼. 이미 알고 있거든. 유명인사가 둘이나 되다니 기자들은 그때 아주 신바람이 났을 거야. 문득 생각난 건데, 휴학은 언제쯤 끝낼 생각이야? 설마 이대로 자퇴를 해버릴 생각은 아니겠지?  부디 스타크 장학 재단의 명성을 유지해 주길 바라, Dear Bianca Joy Charlotte.

 

20XX년 X월 XX일.


오늘 어떤 꼬마애가 날 알아보고 와선 꽃 한송이를 주고 가더라고. 아이언맨과 꽃이 무슨 연관성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름의 호감 표시겠지. 대부분 그렇잖아. 아무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핑크색 장미였는데, 꼭 네 눈색 같더라고. 원래는 옅은 노랑색이지만. 프리지아보다 좀 더 옅은 색이지. 방금 자비스가 말해준 건데 분홍 장미의 꽃말은 '행복한 사랑'이라고 해. Wow, 생각보다 더 로맨틱한 꽃이었네. 꽃 좋아해? 원한다면 다음에 만날 땐 분홍색 장미 꽃다발을 줄 수도 있어. 슈트를 입고 준다면 좀 웃긴 꼴이 될 테니 네가 좋아하는 토니의 모습으로 주도록 하지.


20XX년 XX월 X일.


점점 날씨가 추워지는 것 같아. 물론 만다린에게 습격 당해서 목각 인디언의 판초를 훔쳐 입었을 때보단 훨씬 낫지만 말이야. 조이 넌 추위를 많이 타나? 원한다면 슈트를 입혀줄 수 있지만 그닥 좋아할 것 같지 않네. 슈트의 얼굴 파츠가 날아올 땐 나도 아직 적응 못 했거든. 꽤나 살벌해서 말이야. 내가 만든 시스템이지만. 좀 더 부드럽게 만들 필요가 있었어. 만약 네가 내가 슈트를 입을 때 모습을 그린다면 되도록 얼굴은 그대로 남겨줘. 


20XX년 XX월 XX일.


문득 네가 엉엉 울었던 시절이 기억나네. 2대 1로 싸우는 게 어딨냐며 펑펑 울었지? 그리고 토니 스탱크라는 말에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엄청나게 웃어버리고 말이야. 그 때 내가 너한테 조용히 있으라고 한 건 실수였어. 알잖아, 나 가끔씩 예민해지는 거. 우주에서 망치를 든 사람이 떨어졌을 때 이후로 불안증세도 심하고. 72시간동안 안 잤다며 자비스에게 잔소리 듣는 것도 일상이고. 이렇게 말하니 내가 너무 나약한 인간 같네, 음. 좀 별로야. 아무래도 이건 아니야. 나약하다는 단어는 아예 취소야. 아무튼 그때 일은 미안해, 조이. 네가 이 사과를 받아 들여주길 바라며.


20XX년 XX월 XX일.


친애하는 조이.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몰라. 내가 지금까지 겪은 다사다난한 일이 그걸 말해주고 있지. 물론 난 모두가 아는 '토니 스타크'지만 말이야. 조금 솔직해지자면, 난 불안도 많고 예민한 사람이야. 그래서 항상 밝은 네 모습을 꽤나 좋아하지. 널 보고 있으면 꼭 밝은 햇빛을 보는 것 같거든. 분홍색 눈을 마주칠 때면…, 음. 너무 작업 멘트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줘. 여튼 넌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야. 조이 네가 꼬맹이 시절에 날 만났을 때부터 그렇게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지. 물론 난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인간을 다 파악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아마 뇌를 뜯어보지 않는 한 불가능할걸. 요점은 네게도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을 거라는 거지. 그래도 하나는 확실해. 넌 날 걱정하지. 그것도 많이. 말이 길어졌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야. 모든 게 괜찮을 거야. 전부 다. 날 믿어. 


20XX년 XX월 XX일.


Bye.


 



by 波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