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하게 안개가 낀 골목길 어딘가, 웬만큼 이곳에 통달한 자가 아닌 이상은 찾기 어려울 크기의 문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집은커녕 방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인 크기의 공간에 사내 너덧 명이 둥근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이렇게 맨손으로 거리만 걸어서 뭘 할 수 있다는 건데? 지금까지 했던 시위에서 뭔가 달라진 거라도 있어? 달라지긴 커녕 시선만 안 좋아졌을 뿐이야! 예전보다 더 악화된 상황이라고."
"그래서, 무기를 들자고? 정부의 병력과 전투 무기를 알면서도 그런 소리가 나와? 그랬다가는 혁명이고 뭐고 다 같이 개죽음이야. 지금까지 해왔던 시위까지 다 허사라고!"
목소리가 높아지고 급기야 멱살을 잡을 기세가 되자, 말없이 앉아있던 성민이 손을 휘저어 그들을 제지시켰다. 둘 중 무어라 이어 말하려던 남자는 성민의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을 보고서 짧은 욕을 중얼이곤 자리에 앉았다.
"맞아, 지금까지의 시위가 무용지물이었던 건 사실이야. 그래서, 무기를 들자? 아까 했던 말처럼 개죽음이 될 게 뻔해. 알잖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지."
성민의 마지막 말에 순식간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실상 지금까지 이뤄낸 것보다는 피해가 더 컸다. 정부를 이루고 있는 세력은 모두가 우성과 열성을 가리지 않은 알파였고 그중에서 마저도 열성 알파들은 하급 간부를 맡는 것이 대다수였다. 그나마 투표권을 가진 베타들의 언성으로 필수적으로 일정 수의 베타를 관직에 고용해야 하는 정책이 실행되었으나 오메가들에겐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한숨이 짙게 이어졌다. 시위를 한다고 무언가 크게 달라질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지만 이 정도로 악화가 될 것이라고도 예상치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몇 차례 거리에서 맨손으로 평화 시위를 벌인 결과 알파들의 적나라한 경멸이 어린 시선에 이어 베타들까지 그런 시선을 보내왔던 것이다. 오메가들이 들고일어나자 베타들의 등용을 늘리고 복지 정책을 강화한 것이 정부의 한 수였다. 이이제이. 오랑캐로 오랑캐를 퇴치한다. 그 속담과 같이 기세등등 해진 베타들은 오메가들에게 손조차 대기 꺼려하는 알파들과 달리 직접적으로 경멸을 표했다. 식당에서 오메가라는 이유로 내쫓기는 것은 기본이었고, 어린아이들마저 베타인 아이들에게 맞고 오기 일쑤였다. 성민은 얇은 아랫 입술을 꾹 짓씹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오메가가 아닌 베타인 성민이 이 혁명단체에 들어오기까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계급화가 뿌리내린 사회에서 각 층의 대립은 심화되어 있었고, 베타인 성민이 오메가로 이루어진 혁명 단체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는 의심하는 눈길이 대다수였다. 몇 차례의 시위와 협상을 거쳐서야 그들은 성민을 받아들였고, 베타의 사회를 잘 알고 있는 덕에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장 격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베타조차 오메가에게 척을 진 상황에서 성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민의 어두워진 표정을 본 남자 중 한 명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자, 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어때? 더 진척될 사항도 없는 것 같고. 다들 지쳐 보여."
미간을 구긴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성민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따라서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다들 수고했어. 오늘은 이만 해산하자."
성민의 말에 앉아있던 사내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뒤돌아 나가던 사내 중 한 명이 여즉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있는 성민을 돌아보았으나 성민은 모두가 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집으로 돌아온 성민은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분명 이 혁명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건만. 이젠 모두 소용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성민은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갈 때 미처 끄지 못한 티비의 화면에 낯익은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최준용 국방부 장관의 아들 최우혁. 당연스레 타고난 우성 알파라는 이 사회의 지위와 아버지의 권위, 그리고 수려한 외모와 이 시대의 엘리트라는 칭호까지. 자신과 너무도 다른 모습에 성민은 픽 웃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썩어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그리고 성민이 우혁을 만난 것도 그 때였다. 아직 알파와 베타, 오메가를 계급으로 치지 않던 시기. 성민은 새삼스레 우혁을 처음으로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어디 하나 뚜렷하지 않은 곳이 없는 얼굴 선, 여느 애들보다는 신경질적이던 말투, 그러면서도 분명, 악의는 담기지 않은 짙은 암갈색 눈동자. 기억 속 우혁의 얼굴은 지금 티비에 나오는 우혁의 모습과 별다를 바가 없었다. 아직도 그 말투는 여전할까. 성민의 깜빡이던 눈이 스르르 감기고 티비 위에 걸려있는 시곗바늘이 째깍이는 소리가 티비 소리에 섞였다. 화면 속 우혁은 여전히 자신의 아버지 옆에서 인형처럼 미소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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